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58) 파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이용근

바람을 밀어낸 

파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밤하늘을 밝힌 조명이 환하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한다. 지휘자는 지휘봉을 든 팔로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선을 그리며 소리를 하나로 이끌어간다. 5월의 마지막주 일요일 28일 저녁 8시, 운정 호수공원에서 열린 파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호수음악회 풍경이다.

장엄하고 경쾌한 비제(Bizet)의 카르멘 서곡(Overture Carmen)이 야외 공연장 전체에 울려퍼진다. 곡이 끝나자 잠시간 정적이 흐른 후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쏟아진다. 이용근 지휘자는 관객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두 팔을 높이 들어올린다. 이날 이용근 단장이 이끄는 파주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야외공연장의 녹녹찮은 저녁 바람속에서 관중들을 자리를 뜨지 못하게 잡아내고 환호와 끝없는 박수를 받아냈다.

파주 음악인, 지휘자 이용근

지휘자 이용근은 파주에서 자란 음악인이다. 월롱면에서 태어나 월롱초, 문산동중, 문산고를 졸업했다. 중학교때는 기타에 빠져살고, 고등학교 때는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해 추계예술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국립음대 한스아이슬러를 졸업했다. 이후 음악인으로서의 오랜 꿈이었던 지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체코 오파바 시립음악원에서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통영국제음악단 TIMF 앙상블 소속으로 전세계를 돌며 연주를 이끌고 있다. 또한 파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파주 윈드 오케스트라, 고양 칸타벨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고 있으며 추계예대, 연세대, 대진대와 선화 예술중학교와 고등학교, 고양예고에서 음악수업을 하고 있다.

▲ 지휘중 연주자에게 미소 짓는 이용근 지휘자

마을 노래자랑 단골1등 꼬마,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다

음악을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셨나는 질문에 그는 추억이 서린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즐겨했어요. 그때는 파주가 완전히 시골이었거든요. 우리 시골마을에서 콩쿠르, 그러니까 노래자랑을 열었는데 내가 대표로 나가서 늘 일등을 도맡아 했었어요. 상품으로 큰 시계를 받아 이장님 댁에 놓고 가기도 했어요. 그러다 중학생때는 기타에 빠졌어요. 친구들끼리 원두막지기를 하면서 기타를 치고 놀았어요. 원두막을 지켜주면서 몰래 배 서리도 하고, 기타를 치면서 즐겁게 놀았죠.

고등학교에서는 밴드부를 했는데, 파주가 예전에 밴드부로 유명했거든요. 파주공고(현 세경고), 문산고, 문산중학교, 문산여상, 파주고등학교에 모두 밴드부가 있었어요. 지역 학생들의 음악활동이 무척 활발했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클라리넷과 섹소폰을 배우기 시작해서 음악으로 대학을 갔어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과 체코로 유학을 떠나 지휘를 공부했고요, 그렇게 오늘까지 왔습니다.”

동네 노래자랑에 나가 상을 타던 시골 꼬마아이에서부터 유럽의 유수한 음대를 졸업해 국제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기까지, 그는 음악인으로서의 긴 여정에서 늘 음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함께했다고 말한다.

“세상에 좋은 오케스트라와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이전에 한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세상에 좋은 오케스트라와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 다만, 좋은 지휘자와 나쁜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 라고요. 저는 지휘자는 책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지휘자를 꿈꾸죠. 모든 악기, 모든 음악을 아우를 수 있는 자리가 지휘자의 자리니까요. 저는 운이 좋게도 젊은 나이에 용감하게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어요.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책임감으로 임하려고 노력합니다.”

파주음악인이 모여 만든 32년 역사의 윈드오케스트라

그는 현재 국내외 여러 음악단과 앙상블에서 활동하며 세 개의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고 있다. 그중에서도 파주시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고 말한다.

파주 윈드 오케스트라는 32년 전 파주지역의 밴드부 출신 고등학생과 졸업생들이 지역주민들과 음악을 공유하겠다는 의지로 설립한 오케스트라이다. 현재도 반 이상의 단원이 파주지역 출신 사람들이다.

‘Wind’라는 이름 그대로,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 악단이다. 설립 초기에는 시민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웠다. 공연을 위해 자비를 들이고, 식당을 돌며 후원금을 모아 운영해야 할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어려운만큼 단원들이 더 큰 열정과 의지로 힘을 모아 홍보를 했고, 심혈을 기울여 연주했다. 시골 장터나 마을회관을 돌며 찾아가는 연주회를 열고 음악으로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찾아가는 오케스트라’ 공연방식은 색다른 이슈가 되어 여러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윈드오케스트라는 계속 연간 7~8회 시민을 위한 무료공연을 열고있고, 해가 갈수록 파주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 운정호수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연주하는 파주필하모닉오케스트라

파주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결성

이후 현악기가 추가되고, 외국 유학경험과 프로급 실력을 갖춘 단원들로 구성된 파주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설립되었다. 현재 베토벤 합창과 같은 실내공연은 주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시민들을 찾아가는 야외공연은 윈드 오케스트라가 맡고 있다.

이용근 지휘자는 단원들이 선후배인 윈드 오케스트라와 뛰어난 예술성을 갖춘 파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모두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끈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 파주시 오케스트라의 장점은 끈끈한 정이죠. 정으로 뭉쳐있는 보기 드문 오케스트라예요. 거의 단원들이 선후배 관계이기 때문에 다툼도 덜하고, 공연 끝나고 식사도 자주 하고 합니다. 푸근한 분위기죠.”

“클래식이 뭔데? 가수 안 데려와?” 하시던 시골 어르신들

파주시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가장 특별했던 경험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시골에서의 추억’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초창기에 음악회를 할 때 시골 어르신들을 많이 만났어요. 한 번은 연주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몇몇 어르신이 ‘왜 하나도 모르는 걸 하냐? 아는 노래나 좀 하지.’ 하면서 투덜대시는 거예요. 시골에 공연하러 가면 대게 ‘이건 뭔데? 무슨 음악인데? 가수는 안 데려오나?’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음악인으로서의 책임감과 계몽의식을 느꼈습니다. 아, 우리 클래식 음악이 시민들과 너무 멀리 있구나.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 싶었죠. ”

이후 이용근 단장은 시민들과 소통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 곡 선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누구나 자라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쉬운 곡들을 주로 편성하고, 공연 중간 중간에 곡에 대한 해설도 하고, 쉽게 다가가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관객들의 반응도 많이 바뀌어 예전과 확실히 다르게 더 많이 호응을 하고 박수를 쳐준다고 했다.

“가끔 시골에 연주를 가면, 어떤 대중가수의 공연보다 우리 클래식 공연이 끝나고 나서 박수가 굉장히 길게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시골 어르신들이 어떤 마음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길게 박수를 치시는 거예요. 그럴 때는 저희도 감동을 받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어르신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마을회관에 식사 초대를 합니다. 그런 곳에서 먹는 밥은 그야말로 정이 뜸뿍 담긴 시골밥상인거죠. 같이 밥도 먹고 대화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 음악을 하는 아들이 아빠의 공연을 돕기 위해 리허설때부터 나와있었다.

‘누군가는 가야하는 길’ 이라는 마음으로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의 음악인으로서의 뚜렷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음악을 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을 내가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공연문화나 음악에 대한 인식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아요. 제가 작곡한 곡이나 현대음악을 연주할 경우 한국에서는 별 반응이 없는데, 유럽같은 경우는 굉장히 열광적인 반응이 나올 때가 많아요. 난해한 현대음악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관객들을 볼 때면 음악인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요.”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권리, 좋은 음악을 들을 권리가 더욱 많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로 나아간다. “정치나 나랏일을 하시는 분들은 문화를 돈, 이익의 관점이 아니라 가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당장 돈이 되는 무언가에 투자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예요. 클래식을 향유할 수 있도록 문화정책을 펼친다면 몇 백 년 후까지 대대손손 그 결실을 누리게 될테니까요.”

누구나 클래식을 즐길 수 있도록...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의 파주시에 바라는 것이 있었다. 파주시립 교향악단이 창설되는 것과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을 연주할 수 있는 음악전용 콘서트홀이 지어지는 일이다.

“우리 파주시에도 고양시의 아람누리 같은 대형 홀이 지어지기를 바랍니다. 1,000석에서 1,500석 규모의 홀이 생긴다면, 더욱 풍성하고 예술성이 높은 음악공연이 가능해져요. 시립 교향악단도 창설이 되어서 시에 정식으로 소속된 음악인들도 많이 활동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아직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파주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이제는 전과는 다르게 관객분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져서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클래식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들을 가진 분들이 많지만 변하고 있습니다. 클래식이 대중음악에 비해 어렵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음악의 깊이와 여운… 그 깊은 맛에 한번 심취하시면 아마 계속 좋아하시게 될 겁니다.”

그는 리허설 후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고 공연준비를 하러 떠났다.

야외공연장 무대 위에 펼쳐진 이용근 지휘자의 열정적인 몸짓은 멋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만들며 파주시민의 마음을 붙잡아 오랫동안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글 조은하 객원기자

사진 임현주 기자

#66호